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홍경래의 난

관서 농민 전쟁, 관서 농민 항쟁, 서북 농민 항쟁, 평안도 농민 전쟁
1811.12~1812.4

◆ 세줄 요약

홍경래는 세도 정권의 수탈과 서북 지방 차별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킴.
반란군은 초기 청천강 이북 8개 지역을 점령하였지만, 관군의 반격으로 정주성에 고립됨.
정주성이 함락되면서 홍경래는 사망하고 반란이 진압됨.

■ 배경
 → 17~18C 상품화폐 경제 발달 등으로 농민층이 분해되며, 영세 소농민·유민층이 발생
 → 1798 홍경래는 과거 시험에 낙방하며, 세도 정권의 극심한 수탈과 서북지방 차별에 불만을 품음
 → 평안북도 가산군에  기지를 정하고 부대·지휘부·도시에 조직을 결성
 - 벼슬을 지냈던 가문, 부유층이 지도부에 합류
 → 1800 순조 즉위 
 → 1809, 1810 가뭄으로 인한 대기근 발생과 흉년으로 유랑민이 급증
 → 1811 (황해도) 곡산 민란

■ 홍경래의 난
 → 1811.12.18 세도 정권 타도를 목표로, 다복동에서 500여 명이 모여 남진군과 북진군으로 나눠 출병함 
 → 12.18 남진군은 가산군, 북진군은 곽산군을 점령
 → 12.19 남진군은 박천군을 점령하고 북진군은 정주성에 입성
 → 남진군 내부에서 다음 공격지점을 두고 이견이 발생하며 분란이 발생
 → 12.23 정부의 대응이 시작
 → 12.24 남진군은 송림에 도착하여 안주성 공략에 실패하고, 북진군은 선천을 함락시킴
 → 12.25 남진군은 태천성 접수
 → 12.28 남진군은 송림에 진을 치고, 북진군은 1부대와 2부대로 나뉨
 → 북진군 1부대는 철산을 장악하지만, 회군천 전투에서 의병장·관군에 패하며 용천에 주둔
 → 북진군 2부대는 구성군 점령에 실패하고, 정주성으로 합류
 → 반란군은 안주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정주성으로 퇴각, 백성들은 반란군에게 의지 - 청천강 이북 8개 지역 점령
 → 1812.3 반란군은 공세를 펼치지만, 의병장·관군에 의해 피해를 봄
 → 3월 말 반란군의 식량이 부족해짐
 → 4.3~18 밤 관군은 정주성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화약으로 성을 무너뜨리고, 입성하여 반군을 제압 
 - 홍경래는 사망하고 지도부는 사망하거나 생포됨

■ 이후 농민 봉기 발생에 영향을 미침

# 이미지 출처: [홍경래의 난] 나무위키 2024.8.20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홍경래의 난]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4.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