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정규 군대
■ 1919 대한민국 임정(임시정부)은 군대의 편제와 조직에 관한 법률
발표 - 실행되지 못함
→ 1932.4 ‘윤봉길 의사 의거’를 계기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음
→ 1934 뤼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 설치
→ 1937
중·일 전쟁 발발 → 대한민국 임정은 본거지를 계속
옮기게 됨
■ 1940 대한민국 임정 충칭 정착
→ 1940.9.15 김구 명의로 ’한국 광복군 선언문‘ 발표 - 총사령관 지청천
→ 1941.1 한국 청년
전지 공작대를 편입
→ 1942.5 조선의용대 본부병력
100여 명이 편입
- 병력은 창설 초기 30여 명에서
1945년 4월 경 564명으로 증가
■ 1941 태평양 전쟁 발발
→ 1941.12.10 대한민국
임정은 일본에 선전 포고
→ 1943.5 김원봉과
영국군 대표 맥켄지는 협정을 체결하고 한국광복군 일부는 임팔전선에
배속
→ 1945년 초 한국 광복군은 미국전략첩보국(OSS)와 합작 훈련을
교섭
→ 1945.2 OSS는 한국광복군과 연계하는 ’독수리
작전‘을 승인
→ 1945.8.6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
→ 1945.8.15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8.15) → ’독수리
작전‘은 취소됨
■ 이후
- 미군정은 한국 광복군이 군으로써
귀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한국 광복군은 개인 자격으로 귀환
- 1946.5.16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는 ’한국 광복군 복원 선언‘
발표 - 실질적 황동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