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진주목사 홍병원, 경상도우병사 백낙신
등 탐학한 관리의 수탈과 횡령으로 재정 결손이 발생
→ 1861
홍병원은 2차 향회에서 결손된 환곡, 군역 등을 전세와 함께 토지에
부과
→ 1862
백낙신은 병영의 환곡 중 부족한 부분을 공동 책임으로 분배하여 강제
징수하려함
■ 진주 농민 봉기
→ 1862.2
유계춘을 중심으로 나무꾼 일을 하는 빈농(초군)들은 농민들의 호응과
참여를 촉구
→ 많은 농민들이 참여하며 진주
전역으로 확대
→ 농민들은 관리들에게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공문을 받음
→ 농민 봉기군은
탐학한 향리들을 죽이고, 평판이 좋지 않은 부호들의 집을 습격하여
재물을 약탈
→ 정부는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민란을 수습 - 유계춘 등 10명이 효수됨
■ 영향
-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에서 일어난
임술민란의 도화선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