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임진왜란

■ 1587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규슈지역을 공격하던 중 쓰시마 도주에게 조선의 일본 복속 교섭을 명령
 → 쓰시마에서는 통신사 요청으로 바꾸어 조선의 허락을 받음
 → 1590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
 → 통신사가 귀국하여 황윤길과 허성은 침략 가능성을, 김성일은 다른 의견을 제시
 → 조선은 남부 지역 수비를 보강

■ 임진왜란 발발
 - 왜(일본)는 조선에 명을 정벌하러 가는 길을 빌려 달라고 함 
 → 조선이 요청을 거절하자 이를 구실로 조선을 침략
 → 1592.4.13 일본의 선발대가 부산에 상륙 - 고니시 유키나가, 소오 요시토시 선봉
 → 부산진에서 정발, 동래에서 송상헌이 패배
 → 일본군이 한양으로 북상하는 과정에서 조선군 대부분은 패하거나 도망
 → 상주에서 이일이, 충주 탄금대에서 조선 최정예 부대인 신립의 군대가 패배 → 선조는 피난을 결정
 →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서북 최북단)로 피난(20여 일 만에 한성 함락)
 → 선조는 요동 지역으로 피난 시도하면서 광해군에게 의병 봉기를 촉구
 → 일본군은 한성에서 회의하여 유키나가는 평안도로, 기요마사는 함경도 방면으로 북상

■ 수군과 의병을 활약
 - 1592.5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옥포, 사천, 당포, 한산도 등에서 승리하며 전라도를 지키고, 일본군의 보급 계획(서남해안으로 보급품 전달)을 차단 
 → 일본군은 곡창지대 미확보로 군량 수급에 차질이 발생(일본군은 조선에서 식량을 수급할 계획이었음)
 - 경상도에서 곽재우 등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발생 
 - 류정(서산대사), 유정(사명대사) 등 승려들도 일본에 대항  - 주로 게릴라전을 시행
 - 관군은 재정비하여 권율의 행주대첩, 김시민의 1차 진주성 전투 등을 수행 

■ 명은 대륙으로 진출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지원군을 파견
 - 선조는 의주에서 명에 구원을 요청 → 요동에 있던 조승훈 부대가 참전하지만, 평양전 전투에서 패배
 → 명은 송응창, 이여송이 이끄는 대규모 부대를 파견
 →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이 유키나가가 주둔하던 평양성을 탈환하자 일본군은 한성으로 퇴각 
 → 명은 소규모 부대로 벽제관까지 진격하지만, 복병을 만나 패함 - 벽제관 전투

■ 일본의 휴전 요청
 - 명은 벽제관 전투 패배 이후 군대를 개성으로 돌림
 - 일본군은 보급 문제, 의병의 공격, 명군과의 전투 후,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 명과 일본은 강화 교섭을 시작 (조선은 개입하지 못함)
 → 조선은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지방군을 속오군으로 편재하여 교섭 결렬에 대비 
 → 1596.9 명은 히데요시를 왕으로 책봉하지만, 히데요시는 전리품을 받지 못하자 조선 재침을 결정

 3년간 지속되던 휴전 회담 결렬 
 - 1597.2 일본군은 조선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7월부터 북상하기 시작 - 정유재란 발발
 → 1597.12 명군은 울산성에 주둔하던 기요마사를 공격 - 일본군은 패배하진 않았지만 기세는 하락함
 → 1598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명량에서 대승
 → 1598.8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철군을 지시
 → 이순신은 해상에서 철군하는 일군을 추격하다 노량해전에서 전사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중학교 역사2, 미래엔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