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인 일파가 광해군과 대북파(북인 세력)를 몰아내고 능양군(인조)을 왕으로 옹립
■ 반정 세력의 명분
▶ 첫 번째 - 왕권 안정에 위협이 되는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등의 옥사
→ 1608 임해군
유배 및 사사
→ 1613
계축옥사 - 영창대군을 유폐 및 증살
→ 1615
능창군을 국문 및 금고, 자살에 이르게 함
→ 1617
대비 김씨 폐모론 대두되고 이어 존호를 폐하여 경운궁에 유폐
▶
두 번째 - 인사의 파행과 지나친 부역
- 측근들의 요청과 뇌물에 따른 파행적인 인사
- 창덕궁·창경궁·종묘를
중건하고, 인경궁·경덕궁(경희궁) 건설
▶ 세
번째 -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
- 심하전투(1619) 등에서 명을 배신하는
행위
■ 능양군(인조)과 인척, 서인들은 반정을 진행
- 1622 가을
거사를 준비하였으나 사전에 유출되어 실패
■
1623.3 새벽 거사 진행
→ 1,400여
명의 군사가 창의문을 돌파
→ 궁성 수비 책임자인
훈련도감 대장이 반정에 합류
→ 연회중이던
광해군은 피신했지만 잡힘
→ 반정세력과
능양군은 대비 김씨를 찾아가 보새를
바침
→ 대비 김씨(인목대비)는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을 즉위 시킴
■ 결과
- 광해군은 서인이 되어 강화로 귀향,
대북파는 참형·귀향을 받아 정계에서 완전 실각
- 서인들은
공신이 되어 벼슬을 얻음 → 논공 문제가 발생하여,
이괄의 난(1624)
발생
- 서인이 중심이 되고, 남인이 연합한 형태로 조정이
운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