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애국단의 첫 번째 단원 - 1931년 이전까지
식민지의 조선인으로 생활
→ 1931.1 임시정부
사무실 방문
- 밀정이라 의심받았지만, 김구는 신분을 숨기고 이봉창을 수차례 만남
- 김구는 이봉창이 일왕 즉위식에 간 적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일왕 처단 의거 적임자로 판단, 이후 1년간 거사를 준비
■ 이 사이 만보산 사건(1931.7)과 만주사변(1931.9)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사이에 불신 확대
■ 1931.12.13 거사 준비 완료
→ 17일 상하이
출발하여 22일 도쿄 도착
→ 1932.1.8 육군 관병식
행사에 일왕 히로히토와 만주국 황제 푸이 참석
→ 11:44 일왕이 탔을 거라 생각한 마차에 폭탄 투척 - 일왕이 타고 있지 않았고, 화력도 약했음
→ 두
번째 폭탄을 던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자 자수
→ 10.10 9:00 이봉창 의사는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교수형으로 순국
■ 이봉창 의사 의거 이후
-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받으며 근거지를 계속 옮겨 다녔지만, 악화된 한중관계가
개선되며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음
- 일제는
상하이 사변을 일으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