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365 공민왕과
신돈의 비첩(반야) 사이에서 출생
▶ 1371.7~
우왕(모니노)의 존재가 처음 언급되고, 세자 교육을 받기 시작함.
▶ 1374
공민왕이 시해되며 왕위 계승 문제가 발생함.
- 명덕태후(공민왕의
어머니) 등은 우왕(세자)이 아닌 다른 종친을 왕으로 추대하길
주장했지만,
- 이인임 세력은 공민왕의 유지를
받든다는 명분으로 우왕을 지지함.
■ 즉위 이후
▶ 1374 우왕이
10세에 즉위
- 지지 기반이 없는 우왕은 이인임 세력에 의존하게
됨.
▶ 이인임 세력은 원과의 관계 회복을, 정도전
등 신진 세력은 명과의 교류를 주장하며 갈등이 생김.
▶ 1388
이인임이 축출되고 최영이 국정을 장악하자,
- 우왕은 최영의 딸과 혼인하여 유대관계를 만듦.
▶ 1388
명이 철령위 설치를 통보
▶ 우왕은 최영의 주장에 따라 요동 정벌을
계획하지만, 이성계는 이에 반대함.
▶ 결국 우왕은
최영을 최고사령관으로, 조민수와 이성계를 좌·우군 통도사로 삼아 요동
정벌에 나섬.
- 하지만, 최영은 개경에 남음
▶ 1388.5 위화도 회군 - 조민수·이성계의 정벌군은 위화도에서 개경으로 군사를
돌림.
▶ 조민수·이성계의 정벌군은 개경에서 최영의
군대를 격파하고, 우왕을 폐위함.
■ 폐위 이후
▶ 1388 조민수와
이색 등은 33. 창왕을 추대하지만,
▶ 1389
이성계 세력은 조민수와 이색 일파를 축출하고 34. 공양왕을 옹립함.
- 우왕과
창왕은 고려 왕족이 아닌 신돈의 자손이라는 우창비왕설을 주장
▶ 1389
결국, 우왕과 창왕은 이성계 세력에 의해 살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