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원의 성립과 변질
→ 1542
주세붕은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한 사당을 지음
→ 1543
사당 앞에 사교육 기관인 백운동 서원을 설립
→ 1548
이황의 요청으로 백운동 서원은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음
- "사액"은
왕이 직접 서원의 이름을 내려주는 것
- 사액을 받은 서원은 국가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으며,
면세 혜택을 받음
→ 13. 명종 대, 14. 선조 대
서원들이 국가의 보조를 받으며 각지에 세워짐
- 공자·유학자들의 제향과 사림계 정치적 입장을
뒷받침 역할 수행
- 붕당정치가 시작되며 서원은 중앙 집권세력과 밀착
→ 19. 숙종 대
환국 등으로 숙청된 인물의 복권 기도 장소로 변질되며, 같은 사람에게
제향하는 중복된 서원이 만들어짐
→ 1741
탕평 정책의 하나로 173개(전체의 1/10 정도)의 서원 철폐
■ 고종 대 서원 철폐
→ 1863.4
신정왕후의 전교로 서원 실상 파악
→ 1863
신정왕후의 전교로 서원 신설 금지
→ 1865 신정왕후는 대보단과 중복된 만동묘 폐쇄 전교를 내리고
관철함
- “만동묘”는 임진왜란에 도움을 준 명나라
의종과 신종의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
→ 1866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박해 - 서원 철폐
문제는 뒤로 밀림
→ 1868.5~
미사액 서원 정리(서원 재정리)
→ 서원에 불법으로
있는 사람을 군정으로 뽑고, 고을 수령이 서원의 장을 맡게하여 중앙
통제를 강화
→ 서원을 철폐하며 남은 재산을
국고로 귀속함
→ 1871
결과적으로 한 사람에게 제사 지내는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여
47개만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