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623
인조 즉위 - 인조는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겪으며 반청
여론을 기피
→ 1644
명 멸망 - 조선의 대청 사대 강화
■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
- 병자호란 이후 청에
끌려가 심양(선양)에서 8년간 체류하다 명이 멸망한 뒤 조선으로 귀국
- 청에서
서양 문물을 접했으며, 청의 유력 인사와 친교를 맺고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노력
- 1645.2
소현세자 귀국 → 2개월 후 죽음 → 인조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
→ 1649
효종 즉위
- 군비 증강과 왕권 강화를 통해 북벌을 추진(대청
복수)
- 송시열,
김상헌, 권시 등 서인 산림세력, 남인 등과 연합(대명 의리)
■ 북벌 준비
- 인조대 군비증강을 위해 설치한 어영청의
군사를 7,000명에서 21,000명으로 증액
- 왕의
친위병인 금군을 기병화하고 군액을 600명에서 1,000명으로 증액
- 중앙군인
훈련도감도 강화하려고 했으나 예산 문제로 실현하지 못함
- 남한산성
수비대인 수어청을 강화, 남한산성에 대포 300문 설치
- 무장들에게
병법을 교육하고, 평야전에서 유리한 장병검을 제작
- 표류해
온 하멜을 통해 조총, 화포 제작 등의
무기 개량
- 영장제를 시행하여 지방 군사력
강화
→ 이러한 군사력 증강은 나선정벌에서 조선군의 활약상으로
나타남
→ 이후 효종은 나선정벌을 명분으로 산성을
수리하는 등 군비를 확충
■ 북벌 파기
- 효종 승하 후 서인 산림세력은 북벌을 중지하고, 남인은 명맥을
이어감
→ 1674 숙종
즉위 - 남인이 정국을 주도
→ 1680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면서 북벌론도 사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