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836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는 조선인 최초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음
→ 1839 기해박해 - 앵베르(Imbert) 주교 등이 처형됨
→ 1842
김대건은 프랑스 함대 조선인 통역사로 활동
→ 1845.1
김대건은 서양인 선교사의 조선 입국을 준비를 마침
→ 1845.6.2
김대건은 외국인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올 수 있는 항로를 개척하여
상해에 도착
→ 1845.8.17 김대건은 상해에 있는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됨
→ 1845.10.12
페레올(Ferréol) 주교, 다블뤼(Daveluy) 신부를 데리고 충청남도 강경에
입국
→ 1845.11
김대건 신부는 서울과 용인을 중심으로 선교활동 시작
→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에게 더 많은 서양 선교사의 안전한 입국을 위해 해로를
찾으라고 함
→ 1846.5
김대건 일행은 백령도에서 배를 징발하려는 과정 중 시비에 연루되어
관아로 연행됨
■ 병오박해
- 관아에서 김대건이 천주교 신부임이
확인되자 한양으로 보내져 역모로 국문을 받음
→ 1846.8
프랑스 함대는 충청도 홍주 앞바다에서 기해박해 문제를 거론하며,
프랑스와의 통교를 요구
→ 1846.9 김대건은 ‘국가반역죄’, ‘사교의 교주’라는 죄목으로
새남터에서 효수됨
- 김대건, 현석문, 남경문, 한이형 등 9명이 처형
■ 이후
- 병오박해 과정에서 김대건 신부는 서양인
성직자들의 존재를 말하지 않아 그들의 선교 활동은 지속됨
- 김대건
신부가 개척한 항로는 보완되어 꾸준히 활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