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명량해전

■ 1592 임진왜란 발발
 → 1593.5 한산도대첩(1592.7) 이후,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한산도로 이동하여 주둔
 → 1593.8 이순신은 조선 최초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
 → 일본과의 강화 교섭 결렬로 일본의 재침략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가토 기요마사의 조선 공격 정보를 흘림
 → 이순신은 이에 신중하게 대처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체포하고 원균을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
 → 이순신은 죽음을 면하고 도원수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함 

■ 7.16 칠천량해전 - 원균은 일본과 교전하지만, 대패
 - 원균과 이억기(전라 우수사), 최호(충청 수사)는 전사, 배설(경상 우수사)은 탈출
 - 이순신이 파직될 당시의 전선 130척은 십여 척만 남음
 → 8.3 이순신은 조정의 재기용 명령을 받음 -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기용

■ 명량해전 준비
 - 1593.8.9 군사 120명, 전선 12척 확보 
 → 조선 조정은 육전에 합류를 명령하지만, 일본 수군 격멸을 천명(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으니...)
 → 8.19 회령포에서 배설로부터 전선 12척 인수 → 8.24 어란포로 진영을 옮김
 → 8.26 전라 우수사 김억추가 전선 1척을 이끌고 합류
 → 8.28 새벽, 일본 군선이 어란포를 습격, 이순신이 탄 기함이 이를 추격 → 같은 날 저녁, 장도로 진영을 옮김
 → 8.29 아침, 벽파진으로 진영을 옮김
 → 9.7 일본 군선 12척이 접근하자 이를 추격하고, 야습에 대비하여 습격을 좌절시킴
 → 9.14 일본 함대 200여 척 중에서 55척이 어란포에 도착
 → 9.15 명량해협 서쪽에 위치한 전라우수영으로 진영을 옮김

■ 명량해전
 - 9.16 아침, 일본 군선이 유리한 조류를 타고 빠르게 전진
 → 200~300여 척의 일본 군선 중 133척 정도의 일본 중소형 군선만 명량해협을 통과해서 조선 수군을 에워쌈
 → 이순신의 대장선은 총통과 화살로 일본 수군을 공격하고 다른 배들은 교전을 회피
 → 안위와 김응함의 배가 교전에 합류하지만, 안위의 배는 일본 군선에 둘러싸여 위기에 빠짐
 → 이순신, 송여종, 정응두의 배가 합류하여 안위의 배를 구함
 → 조류가 조선 수군에게 유리하게 바뀌자, 일시에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일본 수군을 공격하여 격파 
 → 일본 수군은 후퇴
 - 조선 수군은 1척의 전선도 격파되지 않았지만, 일본은 13척이 격파되고 90여 척이 파손됨

■ 명량해전의 영향
 - 조선은 서해안 제해권을 확보하여 일본 수군의 서해안 진출을 막음

□ 명량해협
 - 진도와 화원반도 사이에 있는 2km 내외의 좁은 수로
 - 가장 좁은 곳은 폭 300m 정도이며, 최저 수심은 1.9m
 - 조류가 매우 빨라 20리(약 7.9km) 밖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울돌목’이라 함



# 참고 자료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