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동학군 2차 봉기


◆ 세줄 요약

전주화약 이후 동학 농민군은 폐정 개혁 활동을 이어갔으나, 일본군이 조선 정부를 장악하자 다시 봉기함.
동학 농민군은 공주로 북상하며 관군·일본군과 충돌했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함.
농민군은 이후 간헐적인 항쟁을 이어갔으나, 결국 해산됨.

■ 이전
 ▶ 1894.1 (-) 고부 농민 봉기
 ▶ 1894.3 (-) 동학 농민 운동 →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국내에 파견, 톈진조약에 의해 일군도 파견
 ▶ 1894.5 (-) 전주화약 - 동학 농민군과 조선 정부는 농민군 철수와 집강소 설치에 합의
 ▶ 집강소가 설치되어 폐정 개혁 활동을 추진하고, 조선 정부는 청과 일에 철군을 요구
 ▶ 1894.6 (-) 갑오개혁 -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왕권을 제한하는 내각 중심의 정치를 강제 
 ▶ 7.1 청·일 전쟁 발발

■ 동학군 2차 봉기
 ▶ 동학 농민군은 조선 정부를 장악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봉기
 ▶ 1894.8 말 (-) 전봉준 등은 전북 삼례에서 재봉기 준비
 ▶ 1894.9 (-) 전봉준 직속 4천여 명의 농민군이 참여하여 2차 봉기
 ▶ 1894.10 (-) 농민군이 논산을 거쳐 공주로 북상하며 6천여 명이 합류
 ▶ 충청감사는 관군과 일본군에 지원을 요청하여 정예 관군 800명과 일본군 120명이 공주에 모임
 ▶ 10.23~25 (-) 1차 격전(공주 전투, 능치 전투)
 - 농민군은 호전하지만, 일본군 지원이 도착하며 퇴각함
 ▶ 11.8~11 (-) 2차 격전(우금치 전투) 
 - 농민군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진압군을 압박했지만, 진압군은 높은 고지를 점령하고 농민군이 접근하면 사격으로 대응
 - 2차 봉기에 가담한 1만여 농민군 중 생존자는 500여 명
 - 전봉준 부대를 중심으로 한 농민군 세력이 이 전투를 기점으로 급격히 쇠퇴 

■ 이후
 ▶ 이후 간헐적으로 지역별 항쟁이 이뤄지지만, 계속 패배하며 농민군은 완전히 해산
 ▶ 1895.1 ? 전라남도 진도에서 마지막 항쟁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우금치 전투]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