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
▶ 1908.8~12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제정 후 경성(서울)에 본점을 설립.
- 일본
정부가 경영을 주도하고, 대한제국 토지를 강제로 제공받아 자본의 약
30%로 활용.
- 제공받은 토지는 교환·변경을 통해
경기·경남·황해도 농지에 집중함.
- 일본은 이 회사를 통해서 조선 농민의 토지를 일본인
자작농에게 배당하여 식민지화 정책을 추진함.
■ 주요 사업
▶ 1909.2 운영
개시
▶ 1910.8 한일 병합 조약
- 1914 2.1억
평(7만 정보, 여의도 면적의 약 72배)의 토지를 보유
□ 이민
정책(1911~1927)
▶ 1910.9 이주 규칙
마련 - 일본에서 소작농과 토지를 매입할 자작농을
모집
- 조선 농민의 소작권을 무시하고, 일본인
자작농 이민자들에게 토지를 배당하여 이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함.
▶ 1915
일본인 이민자가 부족해지자 토지를 할당받을 일본인 지주를 모집
- 조선
농민들은 지주들의 높은 소작료 부과에 항의하며 저항을 이어감.
▶ 1917
회사법 개정 - 계속된 농민들의 저항에 이민 사업을
축소
▶ 1919 3.1 운동
▶ 1921 일본인 이주
대상자를 지주로 전면 변경
▶ 황해도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소작료 부과, 일본의 실력 행사 등으로 소작쟁의가 전투화
되며,
▶ 1926
의열단원 나석주가 경성지점에 폭탄을 투하함.
▶ 1927
일본인 농민 확보 실패, 조선 농민들과 갈등 등으로 인해 이민 정책은
전면 중단됨.
□ 금융 사업(1917~1945)
▶ 1917 회사법
개정 - 금융 기관으로 전환하여 척식 자금을 공급
▶ 1926
조선식산은행(1918~)과 2차
산미증식계획의 실행자 역할
- 조선인에게
고리로(일본인에겐 저리로) 대출하여 몰락하면 그 토지를 회사가
가져옴.
▶ 1930년대
압록강 전력 개발, 임업, 광업 등을 중심으로 국책사업의 주식과 채권을 인수
▶ 1936
선만척식주식회사 설립 → 조선인의 만주 이주 촉진
▶ 1937 중·일 전쟁 개전 → 전시체제기 시작
▶ 1941 태평양 전쟁 개전 -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기습
▶ 1940년대 비행기, 선박, 무기 생산에 자금을 집중하여 투자하며 일본
전쟁 경제의 핵심 지원 역할을 수행함.
▶ 1945.8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하며,
▶ 1945.9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폐쇄기관으로 지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