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남연군묘 도굴 사건

1868.5

◆ 세줄 요약

1. 오페르트, 페롱, 젠킨스는 남연군묘를 도굴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2. 이 사건으로 조선은 천주교 박해를 강화하고 서양인에 대한 반감이 커졌습니다.
3. 오페르트는 함부르크에서 투옥되었고, 페롱과 조선 천주교 신자들은 프랑스에서 보호받았으며, 젠킨스는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 남연군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
■ 오페르트의 조선 항해
 → 1866 봄 병인박해 
 → 1866.3 오페르트는 충청도에 상륙하여 교역을 요구하였지만 실패
 → 1866.8 오페르트는 충청도에 재상륙하여 한강 하류까지 이동해 통상을 요구했지만 실패
 → 1866.9 병인양요 - 오페르트는 조선을 탈출한 프랑스 선교사 페롱을 만남
 → 병인박해를 피해 상하이로 피신한 조선인 천주교도들은 페롱에게 남연군묘 도굴을 제안하고, 페롱은 오페르트에게 남연군 묘 부장품을 탈취해 대원군과 협상하자고 제안
 - 이들은 박해와 통상 수교 거부의 원인이 대원군이라 생각 
 → 상하이 미국 총영사관 통역을 지낸 미국인 젠킨스가 금전적인 지원을 하며 합류
 → 함부르크 출신 상인 오페르트, 프랑스 선교사 페롱, 미국인 젠킨스는 선원과 선박을 준비하며 도굴을 준비

■ 남연군묘 도굴 사건
 → 1868.5.8 아산만 접근
 → 1868.5.10 새벽 삽교천 진입
 → 5.10 오전 구만포 상륙하고, 덕산군 관아를 습격
 → 5.10 오후 남연군묘에 도착하여 도굴 작업을 진행했지만, 묘 입구가 돌덩이에 막혀있어 작업을 포기하고 철수 
 → 5.13 영종도 앞바다에 정박하여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결렬
 → 5.17 영종도에 상륙하지만 조선 측과 충돌

■ 결과
 - 조선은 천주교 박해를 강화하고, 서양인들에 대한 반감이 증가 
 - 오페르트는 함부트크에서 재판을 받고 3개월간 투옥
 - 프랑스 선교사 페롱과 상하이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은 프랑스에서 보호
 - 미국인 젠킨스는 영사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



# 참고 자료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남연군묘 도굴]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4.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