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801
신유박해 - 주문모 신부의 처형으로 조선에서 정식 사제가
없어짐
→ 1816
정하상, 유진길 등은 조선 천주교회 재건과 외국인 선교사 입국에
노력
→ 1827.9
교황청과 산하 포교성성에서는 파리 외방정교회에 조선을 도와줄 것을
요청
→ 1831
브뤼기에르(Bruguiére) 주교가 조선
교회에 목자로 지원하면서 조선대목구가 설치 - 1대
교구장에 취임
→ 1832
브뤼기에르 주교가 마카오에서 출발, 모방(Maubant) 신부를 만나 함께
조선으로 향함
→ 1834.1
조선대교구의 보좌로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정하상의 안내를 받아
입국
→ 1835
브뤼기에르 주교가 병으로 사망
→ 1836.1
모방 신부가 입국하여 조선 천주교회를 이끌며 선교활동을 실시
→ 1837.12
2대 교구장으로 앵베르(Imbert) 주교
입국, 이후 샤스탕 신부 입국
■ 기해박해
- 1834
헌종 8세에 즉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시작 - 시파 세력이 정국을 주도
→ 1837
벽파 계열이 정국을 주도하며 천주교 탄압 상소를 올림
→ 1839.3 순원왕후는 사학토치령을 공포 → 남명혁, 박희순 등 9명이 처형되고, 이후에도 박해는
지속됨
→ 1839.7
앵베르 주교는 포도청에 출두하고 모방, 샤르뎅 신부에게 자수를 권유
→ 서양인
선교사 3인 참수
→ 1839.10
척사윤음 반포
→ 1839.12
마지막 처형 실시
- 모두 54명 참수, 60여 명이
사망하여 100여 명이 넘는 순교자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