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506
중종반정 -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에 의한 반정으로
중종을 옹립
→ 중종은 훈구파를 견제하고,
성리학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지향하며 사림을 등용
→ 중종은 조광조 등 기묘사림과 함께 개혁정치를 펼치지만, 점차
급진적 개혁에 부담을 느끼게 됨
→ 1510 조광조
일파는 반정에 적극 가담하지 않은 가문 내력으로 폐비 되었던. 단경왕후
복귀 주장
→ 여씨향약이 전국에 실시
→ 1518
소격서 폐지 - 왕실에서 주관하는 도교 행사를 폐지
→ 1519
현량과 실시 - 추천을 통한 인재 선발로 사림이 증원됨
→ 1519 반정공신 위훈 삭제 - 중종반정 때 부적절하게 공신으로 선정된 사람들에 대한
공훈(위훈) 삭제
■ 기묘사화
→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이 비밀리에
중종을 만나고, 중종은 곧바로 밀지를 내림
→ 기묘사림
주요 인사들은 체포되고, 위훈 삭제 처분은 취소됨
→ 조광조
등 기묘사림 투옥되자 성균관 유생들은 광화문에 모여서 무죄를 호소
→ 조광조는
사사되고, 기묘사림은 사사·자결·유배·파직 됨
■ 이후
→ 현량과는 혁파되고, 소격서는
재설치됨
→ 1521 신사무옥 - 기묘사화의 여파로 훈구세력의 정치적 우위가 더욱
확실해짐
→ 훈구 세력은 왕위 계승 후보자를
둘러싸고 대윤과 소윤으로 분리 - 척신 정치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