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894 동학 농민 운동이 발생하고,
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
→ 1894.6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조선에 파견되고, 톈진조약에 의해 일본도
군대를 파견
→ 1894.6
조선 정부는 농민군과 전주화약을 맺고, 청군과 일군의 철군을 요구
→ 일본은
조선의 잦은 변란을 해결하기 위한 내정 개혁을 요구하며 철군을 거부
→ 1894.7
노인정 회담에서 조선은 자체적 개혁할 것을 일본에 통보
→ 1894.7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압박하여 내정 개혁을
추진
- 흥선대원군은 입궐하여 임시로 고종의 권한을
대신 행사함
■ 1차 갑오개혁, 군국기무처 주도
→ 1894.7.26 (음 6.25)
군국기무처 설치 - 김홍집 등 온건 개화파와 흥선대원군
계열 등 참여
- 일제 내정간섭하에 추진,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간섭은 못 함
- 갑신정변(1884)의 정강과 동학 농민군의 요구를 반영하여 왕권 제한 내각제, 신분제
폐지 등
→ 1894.9 (음 8월) 청·일 전쟁에서 일본은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에 승리하며 유리한 위치를 확보
→ 9.28
이노우에 가오루 특명 전권 공사가 조선에 부임
- 흥선대원군을
축출하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를 귀국시킴
- 조선
보호국화 정책을 시행하여 일본 관료를 조선 조정에 배치하고, 일군의
한반도 영구 주둔을 추진함
→ 12.17
군국기무처 폐지
■ 2차 갑오개혁,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
→ 1895.1.7 (음 1894.12.12)
고종은 ‘홍범 14조’를 발표하여 군국기무처의 개혁을 계승
- 청에
대한 의존적 관계 청산, 사법권 독립 등
→ 1895.2
교육입국 조서를 반포하여 근대 교육 제도 마련
→ 1895.4
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청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지만,
러시아·프랑스·독일이 개입
→ 이노우에는 차관 정책 실패와 러시아의 개입 등으로 조선
보호국화 정책에 난항을 겪음
→ 이에 박영효는 독자 노선을 추구하지만,
김홍집·왕실과 충돌하며 결국 일본으로 망명함(1895.7)
→ 이노우에의 조선 보호국화 정책은 실패함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 1895.6.3
미우라 고로 특명 전권 공사가 조선에 부임
→ 1895.10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으키고,
친일 내각이 수립하여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을 진행
- 단발령,
태양력 시행, 소학교령 시행 등
→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들은 단발령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반발하며
봉기(을미의병)
→ 1896.2
아관파천 - 고종은 개화파 내각 구성원을 모두 파면하고, 김홍집은
군중들에 의해 사망
→ 1896.2.16
고종은 갑오개혁 계승을 선언하고, 광무개혁(1897)에서 갑오개혁을 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