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과 개화파 분화
→ 1876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 조선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로 편입됨
→ 1880.12
조정은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청과 일본을 참고하여 개혁을 추진
→ 1882 임오군란 → 청군이 조선에 주둔하고, 청의 내정 간섭이 심해짐
→ 1882.9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어 경제적 침탈이 이어짐
→ 1882 후반 개화파는 청의 내정 간섭과 개화 추진 방식 등을 놓고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뉨
- 김옥균 등 급진파는 청에 대한 독립을
우선함
→ 1884
청·프 전쟁으로 한성에 주둔한 청군의 절반이 철수
→ 1884.8~10
급진 개화파는 일 공사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정변을 준비
■ 갑신정변
→ 1884.10.17 19:00
우정국 개업 축하 만찬 시작
→ 10.17 21:00
우정국 옆에서 방화가 늦게 일어나며 주요 인물 처단에 실패하자, 김옥균
등은 창덕궁에 있는 고종에게 향함
→ 정변 세력은 고종과 경우궁으로 이동하고, 일군이 경우궁을
경호
→ 10.18 자정 이후
경우궁으로 고종을 찾아온 민씨 일파 등 핵심 세력을 제거
→ 10.18 아침
정변 세력은 의정권, 군사·치안권, 재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인사를
발표
→ 10.18 17:00
고종과 창덕궁 관물헌으로 이동
→ 10.19 10:00
개혁 정강 발표하여 국가 체제의 개혁을 모색
- 국가
재정 확보, 군사 기반 조성, 신분 제도 철폐, 청에 대한 조공 폐지 등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함
→ 지방에 주둔한 청군이 서울로 합류하여 창덕궁을
공격
→ 10.19 19:30
김옥균 등은 일본 공사관으로 후퇴
→ 10.23
김옥균 등 개화파 9인은 일본으로 망명하고, 조선에 남아있던 세력은
대역죄로 처단됨
■ 이후
- 개화 정책은 중단되고, 청의 내정 간섭이
심해짐
- 청은 조선을 자국 방어 울타리로 삼으려
하고, 일은 조선을 대륙 진출에 필요한 요충지로 여김
→ 1885
톈진조약 체결로 양국은 조선에서 군대 철수와 사전 통보 의무를 합의
→ 1894 동학 농민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