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발 수출 업체인 YH 무역 회사 측의 위장 폐업 조치
- 노동자들의
생존권 차원의 투쟁이었지만 유신체제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강경하게
탄압
■ YH 무역
- 1965
YH 무역 설립 - 근로자 10여 명의 가발 생산 업체
→ 1970
근로자 4천여 명의 회사로 성장, 1천만 달러 수출로 철탑산업훈장을
수상
- 이후, 사장은 YH 무역 뉴욕지사장으로 활동,
사장 자리는 동서에게 맡김
→ 1975.5
YH 무역 노조 결성
→ 1979.3.30
YH무역은 4월 30일 자로 폐업을 공고
- 뉴욕지사는
본사로부터 제품을 싸게 수입한 후 대금 결제를 하지 않는 사실상 외화
도피 실시
- 본사 사장은 회사자본을 빼돌려 YH
해운을 설립
→ 1979.8.9
근로자 기숙사 폐쇄, 10일까지 퇴직금과 해고수당 수령 요구
→ YH무역
노조는 종교·인권 단체에 도움을 요청
■ 농성의 정치화
- 8.9 새벽
YH 노조는 신민당 당사로 농성 장소 이동
→ 8.9 오전
문동환 목사,
고은 시인 등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김영삼 총재는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약속
- 노동자들은 신민당 당사 4층 강당에 모여서
농성 진행
- 신민당은 당내 대책위원회 구성, 국회
보사위원회 소집 요청(→ 여당 반대로 무산), 대정부 비난
성명 발표
- 정부는 신민당 당사를 경찰기동대로
포위
→ 8.11 새벽 2시
경찰의 농성진압작전 개시(101호 작전) - 1천여 명의
경찰이 당사로 진입하여 조합원·국회의원· 당원·기자들을 폭행
- 이
과정에서 22살의 노조 상무집행위원 사망
- 당시 자해로 발표됐으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는 손등과 후두부에 치명적 상처가 있었다고
발표
→ 노동자들을 7개 경찰서에 분산 수용,
김영삼 총재도 강제로 자택으로 보내짐
→ 8.12 오후
YH 노조는 최소한의 퇴직금 수령 후 고향으로 보내짐
■ 이후
- 정부는 YH 노조 여성노동자들의 취업을
제한
- 문동환 목사, 고은 시인 등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및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
- 유신
독재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여당은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국회
의원직에서 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