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979 10.26 사건 → 사실상 유신체제가 붕괴되며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 분출
→ 1979 12.12 군사정변 → 신군부가 군 지휘권 장악
→ 1980.4~5
계엄 철폐와 유신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 발생
→ 5.15
서울의 봄 - 서울역에 10만 대학생 결집하여 시위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5.17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통해 24:00를 기준으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
→ 5.18 2:00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
→ 5.18 아침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비상계엄과 휴교령에 반발하며
시위
→ 5.18 오후
7공수여단이 진압에 참여
→ 5.19
11공수여단이 광주에 추가 투입되고, 장갑차·헬기 등 중장비 동원
→ 5.19 16:40
시민들이 계엄군 장갑차를 공격하자, 군 장교가 발포하여 총상자 발생
→ 5.20
시위가 확산하여 시민들이 광주 MBC와 광주 세무서를
불태움 → 군은 무장을 명령하고, 3공수여단은 광주
시청에서 시민을 향해 발포
→ 5.21 새벽
군병력이 광주역에서 전남대로 복귀하며 시민들과 충돌
→ 시민들은
광주역에서 시위 참여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금남로로 행진하며 계엄군과
대치
→ 5.21 정오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를 시작하자, 시민들은 무기고를 털어 자체
무장하고 전투를 개시
→ 5.21 오후
공수부대는 광주시 외곽을 봉쇄하고 이동하는 시민을 향해 무차별
발포
→ 5.22
계엄군이 물러나자, 시민들은 수습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에
평화적 협상을 요구
→ 5.23~26
도청 광장에서 시민 궐기대회를 개최
→ 5.27 3:30
상무충정작전 실행 - 계엄군은 탱크와 헬기를 동원하여 시민군이 모여있던 전남
도청을 장악
■ 이후
→ 1995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 1997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지정
→ 1997.4
전두환·노태우는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같은 해 12월 특별 사면됨
→ 2011
인권 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유네스코에 등재
→ 2018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