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건국 초, 양계 지방에 대한 방어 체제를 정비
- 평안도(서북 지역)는 명과 원의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 중심의 기지를 설치
- 함경도(동북
지역)는 여진의 소규모 부대의 침입에 대비하여 진을 설치하고 회유
정책을 추진
■ 여진 토벌
→ 1410 태종의 여진 정벌 단행
→ 1432
평안도 지역에서 여진의 침입으로 군사적 충동
발생 → 세종의 1차 여진 세력 토벌 실행
→ 1437
2차 여진 세력 토벌 실행
■ 4군 설치 - 여진과의 무력 충돌 상황에서 압록강 상류 지역에 4개의 군현
설치
- 1416~1443 여연군, 자성군, 무창군, 우예군
설치
■ 6진 개척 - 조선 초 두만강 유역을 확보하였지만,
태종대 여진족의 약탈로 방어선이 남쪽으로 후퇴
→ 1432
여진 추장의 죽음으로 부족 간 대립 발생 → 세종은 국경선 회복을 결정
- 1434~1449 회령도호부, 종성도호부,
경원도호부, 경흥도호부, 온성도호부, 무령도호부 설치
■ 4군 6진 개척 후
- 1440
행성 축조 결정, 세종 사후까지 10년
넘게 진행
- 사민입거를 진행하여 토지와 관직,
면세 혜택을 제공하지만, 백성들의 저항 발생
→ 관료
중 국경방어 포기 의견이 나왔지만, 세종은 ‘조상들의 강역을 줄일 수
없다’는 입장 고수
■ 4군 폐지
- 원의 후예인 오이라트 부족이
몽골에서 세력을 키우며 성장
→ 1449 명 정통제가
오이라트 부족 평정을 위해 출전하지만, 포로로 잡히는 ‘토목의 변’
발생
→ 오이라트의 조선 침입 시 현재의 방어선이
무력하다는 의견 대두
→ 1455 평안도 4군의 병력을 뒤로 물리도록 결정 - 4군 개척의 최종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