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과 시민의 힘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화 운동
■ 이승만은 발췌개헌(1952), 사사오입
개헌(1954)을 통해 영구집권 기반을
마련
→ 1956.5
정·부통령 선거 - 이승만 대통령, 민주당 장면 부통령 당선
→ 1958.5
민의원 선거 - 자유당(여당)은 불법적 방해에도 개헌선의
2/3 확보 실패, 민주당(야당)은 개헌 저지 의석 확보
→ 1960.2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병사 - 이승만의 당선이
확실시됨
→ 1960.3.3
민주당에 의해 여당의 부정선거 방법이 폭로
■ 2.8 대구 민주 운동과 3.15 부정선거
- 2.28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의 첫 시위가 발생하고 , 선거 전까지 전국 각지에 시위 발생 - 주로 고등학생이
주도
→ 3.15 부정 선거
강행 - 선거 결과 이승만 88.7%, 이기붕 79% 득표
→ 3.15 오후 3시 경
부정선거의 실상이 드러나자 마산에서 시민과 학생들의 가두 행진
발생 -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 진압
→ 3.15 오후 7시 경
마산시청 앞에서 시위 재개, 정전이 되면서 경찰의 발포
시작 - 김주열이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음
→ 4.11
마산시 신포동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시신 발견 → 분노한 마산 시민들과 학생들은 시위를 진행
→ 4.15
이승만은 마산 시위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되고 조정된 것’이라
담화를 발표
→ 4.18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은 ‘4.18 선언문’ 낭독, 이후 국회의사당에서
연좌농성을 감행
→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도중 정치 깡패가 흉기를 들고
덮치는 사건이 발생
■ 4.19 피의 화요일 - 전국적으로 시위 발생
- 4.19
새벽부터 서울에서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국회 의사당 및 경무대로
몰려듬
→ 4.19
오후 1시 경 10만이 넘는 시위대가 집결 → 30분 뒤 경찰은 경무대에 집결한 시위대에게 실탄을
난사
→ 서울 일대에 계엄령
선포 - 경무대에서 중앙청, 세종로까지 2대의 장갑차를 앞세우고 소탕작전 실시
→ 4.20 오후 5시
이승만은 담화를 발표 - 부정선거를 인정하지 않고,
수습책을 제시하지 않음
→ 4.21
국무위원, 자유당 당무위원 일괄 사표 제출
→ 4.24
이기붕은 부통령 당선을 사퇴하고, 이승만은 성명서 발표(자유당 탈당,
국무위원 사직서 수리)
→ 4.25 대학 교수들은
시국 선언문을 채택
■ 승리의 화요일
- 4.26 오전 10시 30분 이승만 하야 성명 발표
→ 4.26
시국수습 결의안 통과 - 이승만 즉시 하야 등 4개 항
→ 4.27
이승만 사임서 발표
■ 이승만 사임 이후
- 외무부장관 허정이 수석
국무위원으로서 과도 정부의 수반이 됨
→ 6.15
시국수습 결의안(4.26)에 의해
내각책임제 개헌 통과 - 대통령은 국회의 양원
합동회의에서 선출
→ 7.29
5대 민의원 선거, 1회 참의원 선거 진행 → 8.8
제 2공화국 국회 개원
→ 8.12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당선, 다음날 정식 취임
→ 8.19
민의원 회의에서 장면이 국무총리로 선출 → 8.23
장면 내각 정부 출범